다양한 삶의 방식 속 나만이 사는 삶 - 면도날(서머싯 몸) 리뷰

gyumedy 2024. 10. 3. 16:13

 

한국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정답같은 것이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일자리를 얻어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잘 키우고, 승진하고, 정년 퇴직하고.. 그 다음은 뭐지? 모르겠다. 그렇게 떄에 맞춰 할일을 해내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인생을 강요받으며 우리는 살아간다. 실제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그렇게 살았고 그래서인지 자식들이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면 정신차리라 말하는게 일반적이다. 대부분은 다른 삶을 꿈꾸다가도 적당히 현실에 타협하고 부모 말대로 나름 열심히 삶을 살아가며 인생의 숙제들을 해나간다. 에체능이 하고 싶은 아이는 꿈을 포기하고, 자연학문이 하고 싶던 아이는 공대에 들어가 사람들이 흔히 좋다고 하는 회사에 취직을 한다. 가끔 그러한 세상의 반대를 정면으로 맞서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 혹은 부모가 진짜 사랑으로 자식이 무엇을 하던 응원해주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본인만의 인생을 살아가며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들 얘기로는 그런 애들 중 90%는 밥 굶고 살거나 결혼도 못하고 나중에 후회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그건 본인들은 그렇게 못살아봐서 어느정도의 부러움과 망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해져서 그런 생각을 하는게 아닐까? 내가 본 진짜 본인의 길을 뜨겁게 살아봤던 사람들은 나이가 차고 등이 따숩진 못해도 당당하게 자기 삶을 얘기 할 수 있던 사람들이었다.) 

놀랍게도 100년전에 미국, 프랑스를 배경으로 쓰여진 이 책 속의 사람들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정해진 길을 가지 않는 주인공 래리를 똑같이 바라본다. 래리는 전쟁에서 친구가 눈앞에서 죽는 것을 목격 후 돌아와 인생이 무엇인지, 신은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한다.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제안하거나 대학에 들어가라고 하지만 그는 그저 인생의 답을 탐구하고 싶을 뿐이다. 그의 약혼녀 이사벨은 래리와 남부럽지 않은 평법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싶어한다. 미국의 번영은 앞으로 당연한 일이고 그레이의 증권사에 취업해 성공대로를 달리며 래리와 가정을 이루며 사는 삶을 꿈꾸지만 래리에게는 인생의 진리가 뭔지 알아내는 것 외에 다른일들은 어떠한 가치도 없다. 조금 남다른 것은 그 당시는 결혼이 당연한 것이라 그런지 래리는 이사벨에게 결혼해서 같이 여행을 떠나자 말한다. 호스텔을 전전하는 삶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래리는 이사벨에게 가진 돈으로 아껴쓰면 여행하며 삶을 살 수 있고 애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사벨에게 그런 삶은 상상도 하기 싫은 삶이다. 여행은 럭셔리해야하고, 싸구려 호스텔에선 단 하루도 묵기가 싫다. 적은돈이지만 궁금한 세상을 탐험하며 책읽고 사는 삶이 사업하다 망하는 사람보단 나을거라는 래리의 말에 기가찬 이사벨은 결국 래리를 사랑함에도 포기한다. 상류층의 삶을 살며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이사벨은 결국 그녀를 사랑하는 그레이와 결혼한다. 아버지의 증권사에서 일하고 돈버는걸 좋아하며 가장의 역할을 다하는 그레이와 아이를 낳고 본인이 원하던 남부럽지 않은 상류층의 삶을 살아간다. 

 

래리는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끝없는 여정을 떠난다. 파리, 런던, 인도 등 계속해서 여행을 다니고 책을 읽고 탄광 등에서 일도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조금씩 본인만의 깨달음을 찾아간다. 본인의 생각이 점점 정리가 되어 책도 쓰고 하지만 그 오랜시간의 수양을 통해 얻은 특별한 깨달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싯다르타'의 사문들 처럼 진리의 발견이 래리 삶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그저 그렇게 평생을 세상을 궁금해하고 알아가는 행위 자체가 그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작가는 래리 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그린다. 평생을 상류층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게 삶의 목적인 엘리엇, 다양한 남자 화가들에게 모델과 정부를 해주며 삶을 살아가다 뒤늦게 본인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수잔, 가족을 잃고 알콜중독, 섹중독에 비참하게 삶을 살아가는 소피 그리고 미국의 끝없는 번영만을 생각하고 막대한 투자 브로커를 했던 그레이와 이사벨은 파산을 맞이하게된다. 작가는 본인이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이야기하지만 특별한 주제의식 따위는 던지지 않는다. 삶의 방식은 너무나 다양하고 어떤 삶을 살아도 고통, 번영, 행복, 불안, 슬픔 등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기에 어떤 삶도 문제 될 것이 없다. 그저 각자의 삶을 살면 된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래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저 끝없이 세상을 탐험하고 진리를 탐구하고 읽고, 보고, 경험하며 살고싶다. 그치만 그레이와 같은 면도 있어서 한번 사는 인생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성공하고 싶다. 사실 진짜 그레이 같은 면은 코인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가 파산 가까이를 겪은 것이다. 그레이도 미국에 대공황이 올지 몰랐다. 나도 코인이 망할줄 몰랐다. 100년전 래리와 그레이는 정말 다른 삶의 궤적을 간 사람들인데 그 둘이 겪은 모두를 나는 다 겪으며 살아간다. 

 

2년반 전 쯤 빠니보틀을 처음 보고 만나던 여자친구한테 내가 저러고 살고 있어야 했는데 왜 회사를 취업했다가 지금 하던 유튜브도 못하고 그냥 이러고 살고 있을까 불평한 적이 있다. 나보다 7살 많았던 여자친구는 내게 '너는 너만이 갈 수 있는 길을 가고 있는거야. 너도 남미 다시 갈거라며 너는 회사도 다녀보고 너만의 길을 잘 가고 있는거야' 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참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늘 불안하다. 어떤이들은 좋은 회사에 취업했으니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잘 살면되지 뭔 퇴사하고 남미를 가냐고 정신차리라 말한다. 물론 나쁘지 않은 삶이다. 많은 돈을 받고, 이정도 워라벨을 누리며 퇴근하고 하고싶은 삶을 사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나는 불안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하지못하고 사는 것도 불안하다. 회사를 다녀도 계속 불안할 것 같다. 승진 때마다 불안할거고, 사실 업무를 함에 있어서도 늘 그룹장이나 윗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일 자체에 내가 열정을 쏟지 못하는 삶이 너무 아쉽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땐 밤을 새도 행복했던 기억이 너무 강렬하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관두려하니 그것도 불안하다. 그런데 이 책이 나에게 말한다. 어떻게 살아도 된다고. 정답은 없고 삶은 어떻게 살아도 불안하겠지만 살아질거라고. 

 

p.s. 수염이 많이나서 40만원을 주고 수염 레이저 10번을 받았다. 더이상 수염이 나지 않고 면도날이 필요없이 살아갈 삶을 전망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끝없이 수염은 자라고 다시 면도날을 사고있다. 서머싯 몸은 그게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